티스토리 뷰

[다이쿠로] 심연


학생회장 다이치x남고 남창 쿠로오


루트1) 모범생




띠링-


알림음이 울린다. 쿠로오는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을 켰다.


‘점심시간.’


귀찮게,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액정을 껐다. 선생의 시선이 힐끔 제 쪽을 향했다. 쿠로오는 신경 쓰지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띠링, 띠링. 핸드폰의 알람이 다시 울린다. 반 아이들이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쿠로오는 눈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야’

‘답장 안 해?’


쿠로오는 느릿하게 타자를 쳤다. 알, 겠, 어. 그리고 전송. 귀찮다. 그는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선생이 무어라 잔소리를 하는 것이 들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아무렴 어때. 2학년으로 올라왔다고 다시 심기일전하는 모양인데, 어차피 몇 번 말하고는 말 터였다. 작년에도 그랬다.




남자를 처음 받았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 방학을 앞둔 무더운 어느 날, 쿠로오는 체육관 뒤쪽으로 불려갔다. 거기엔 꽤 유명한 동급생 대여섯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쿠로오를 둘러싸고는 저들끼리 웃어댔다.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담배꽁초와, 매서운 눈초리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 그들 중 하나가 우악스럽게 옷을 벗겼다.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에 쿠로오는 눈을 감았다. 별로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몽 쪽에 가까웠다. 그 일이 있고나서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애초에 말수가 없어서 늘 혼자였다. 딱히 털어놓을 사람도, 친구도 없었다. 저가 아버지에게 매일 맞는다는 걸 안 그들은 관계를 할 때마다 자신을 때렸다. 일말의 가책조차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안에 담긴 혐오와, 호기심과, 흐릿한 동정.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제 위에서 헐떡대던 녀석들 중 반이 같은 고교로 진학했다. 소문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또 다른 녀석들을 받게 되었다. 모두들 뒤에서는 걸레라고 쑥덕대지만, 막상 제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한숨을 쉬었다.


종이 쳤다.


점심시간이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업을 미처 끝내지 못한 선생을 두고 먼저 교실을 나갔다. 쿠로오는 운동장 한 쪽의 실외 화장실로 갔다. 지저분하고 불편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화장실 벽에 기대 담배를 물었다. 아침을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다.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폐부를 꽉 채우는 연기에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쿠로오는 발끝에 차이는 빈 캔을 굴렸다. 늦는 걸 보니 오늘도 제때 교실에 돌아가기는 글렀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이 뜨거웠다.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야!”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들이 왔다. 쿠로오는 껄끄러운 속내를 삼키며 웃었다. 다가온 남자애가 제 머리를 갈겼다. 퍽, 고개가 돌아갔다.


“뭐가 좋다고 웃어, 병신아.”

“……미안.”


안으로 들어간 쿠로오는 교복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목이 바싹바싹 말랐다. 1년 넘게 겪어온 일이라고 다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누군가 정강이를 찼다. 윽,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흥건한 물에 바지가 젖었다. 이곳 세면대는 걸핏하면 물이 샜다. 남자는 쿠로오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제 앞섶에 갖다 대었다.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쿠로오는 얌전히 입술을 벌렸다.


어느 정도 만족하자 남자는 전희 없이 바로 삽입했다.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돌아가야 하는데. 그 생각은 잠깐이었다. 교실에 가봤자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었다. 쿠로오는 자조했다. 웃음이 기분이 나빴는지, 위의 남자가 뺨을 때렸다. 짝, 소리가 요란했다. 발갛게 부어오른 뺨이 얼얼했다.


“씹, 아래에 힘 안 줘?”


남자가 말했다. 이름이 뭐더라.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쿠로오는 기억해내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욕망을 해결한 그들은 미련 없이 화장실을 나갔다. 가기 전, 쿠로오는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가 빤히 올려다보자 그들은 킬킬 웃었다.


“아아, 화대?”


남자는 지갑에서 지폐를 두어 장 꺼냈다. 쿠로오는 돈을 받아 움켜쥐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굴욕으로 얼룩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이내 그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그는 낮게 숨을 토해냈다. 교복 바지는 이번에도 물에 젖어 축축했다. 도무지 입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쿠로오는 바지를 꾹 짜내고는 변기 위에 걸터앉았다. 바지가 마를 때까지는 여기서 못 나갈 듯 했다. 담배가 당겼다. 바지 주머니를 뒤져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욱. 탁한 연기가 위로 올라갔다. 안에다 몇 번이고 싸댄 탓에 허벅지가 질척거렸다. 그대로 속옷을 입어야하나. 망설이던 쿠로오는 결국 속옷을 입었다. 안에서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지같은 인생이다.


바지가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또 다른 녀석인가, 하고 몸을 일으키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쳐오는 시선이 올곧다. 쿠로오는 순간 숨을 멈췄다.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사와무라 다이치(澤村 大地). 3학년 학생회장이었다.


"너, 수업 시간인데……."


그렇게 입을 뗀 그는 쿠로오의 아랫도리를 보고 말을 멈추었다. 하얀 정액으로 질척하게 젖어 엉망진창이었다. 쿠로오는 이를 악물었다. 쓸데없이 일이 커질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덜 마른 바지라도 그냥 꿰어 입고 교실로 돌아갈 것을 그랬다. 다이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밖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다이치는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쿠로오는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분명 뭐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다. 제가 잘난 줄 아는 녀석들이 으레 하는 말 같은 걸.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거나, 선생이나 경찰에 이야기 해보라는, 그런 의미 없는 말들. 쿠로오는 무릎을 모아 등을 웅크렸다. 조금 뒤에 선생을 데리고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일이 커지는 건 질색이었다. 이미 선생들도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1년간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다들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애초에 명문고교도 아니고 시골의 그저 그런 남고에서 학생들 사이의 성폭행 같은 건 떠들수록 손해였다.


그도 다를 건 없겠지. 쿠로오는 생각했다. 그저 학생회장이라서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2학년 말에 후보로 나간 그는 당연한 듯 학생회장이 되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모범생이었다. 그게 다였다. 쿠로오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날 알고 있을까. 얼굴은 몰라도 이름쯤은 한 번 들어봤을 법도 했다. 돈만 주면 다리를 벌린다고,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덜컹. 문이 열렸다. 쿠로오는 고개를 들었다. 다이치였다.


"이거 입어."


그는 쿠로오에게 체육복을 건넸다. 쿠로오는 얼떨결에 그걸 받아들었다. 체육복 한 쪽에 '사와무라 다이치'라는 이름이 보였다.


“뭐야.”


쿠로오는 눈살을 찡그리며 다이치를 바라보았다.


"불편하면 잠깐 나가 있을게."

“그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닌데.”


쿠로오는 다이치에게 체육복을 내밀었다.


“필요 없어.”

“옷 젖었잖아.”

“그래서? 아아, 너도 한 번 따먹고 싶어? 다리 벌려줄까?”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제 손으로 허벅지를 벌렸다. 이미 한 차례 돌려진 터라 허벅지 안쪽은 피멍으로 얼룩덜룩했다. 다이치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서라도 고개를 돌릴 줄 알았더니 꽤나 바른 시선이었다. 다이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싶은 생각 없어.”

“부담 갖지 마, 한 번쯤은 무료로 해줄 테니까.”

“너.”


다이치가 손목을 붙잡아왔다. 쿠로오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그는 어쩐지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쿠로오는 평소처럼 웃었다. 한 번쯤 대주는 거쯤이야. 이미 닳고 닳은 처지에 대수롭지도 않다.


“좋아서 하는 거 아니잖아.”


다이치가 말했다.


“좋아서 하는 거라면?”


쿠로오는 대꾸했다. 진심은 아니었다. 이렇게 남창 취급 받으면서 사는 거,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자꾸만 말이 엇나갔다. 결국 그도 다른 선생들과 다를 것 없을 거라고. 은연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쿠로오는 애써 입술을 말아 올렸다. 어떻게 해야 백치 같이 웃을 수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웃으면 다들 자신을 내려다보았으니까.


“나 남자 좋아해. 박아주는 거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까지 번다니, 완전 최고 아니야? 오늘도 봐, 이렇게…….”


말을 할수록 목소리가 떨렸다. 목이 멘다. 쿠로오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지폐를 움켜쥐었다. 다이치가 쿠로오의 손을 감쌌다. 그의 팔이 웅크린 등을 안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울지 말고 말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좋아서…….”


목구멍이 뜨겁다. 시야가 일렁이더니 뺨이 축축하게 젖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던 걸까. 쿠로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각했다. 다이치가 저를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맞닿은 체온이 뜨겁다. 한여름의 열기가 답답할 법도 했는데, 쿠로오는 어쩐지 가슴이 떨렸다. 다이치의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의 손이 등을 도닥였다.


“이런 거, 이제 그만해.”


그가 속삭였다. 쿠로오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원한다고 그만 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입술이 떨린다. 다이치는 진중한 얼굴이었다. 고등학생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말하면 뭐든 해결이 될 것만 같다. 착각이라는 거, 알고 있지만.


“할 수 있어.”


다이치는 엄지로 쿠로오의 눈가를 닦아냈다. 부어오른 눈가가 따끔거렸다. 쿠로오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정말로? 쿠로오의 목소리는 눈물에 잠겨있었다. 그래, 라고 답하며 다이치는 옅게 웃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떨리는 손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를 도무지 마주볼 수가 없어서 슬쩍 고개를 숙였다.


“이제 옷 입고 나가자.”


다이치는 그렇게 말하며 쿠로오를 이끌었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지긋지긋한 동정일수도 있지만. 잠깐뿐인 변덕일 수도, 금세 포기하고 날 혐오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를 믿고 싶다.


쿠로오는 조심스레 다이치의 손을 붙잡았다.





-----


아무리 다시 써도 마음에 안 차네요. 결국 포기하고 마무리.

19금으로 안 넘어가려고 애쓰느라 힘들었어요;ㅁ;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