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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x스가




날이 덥다. 뜨겁게 푹푹 찌는 폭염.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땀이 났다. 도쿄 합숙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전, 기말고사가 있었다. 다들 낙제를 면하려고 필사적이다.


“뭐야, 남아서 연습?”


스가와라가 체육관의 문을 열었다. 퉁, 하고 배구공이 체육관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이치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응. 나야 좀 여유로우니까.”


그는 테이블로 걸어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열기로 미적지근한 물이었지만, 여전히 달았다. 텁텁해진 입 안을 축이고 나니 쿵쿵거리던 심장도 한결 나아졌다. 스가와라는 교복 단추를 끌렀다.


“도와줄까?”

“기말고사, 괜찮아?”

“당연하지. 내가 다이치보다 점수 높다고.”


스가와라는 하얀 반팔 차림으로, 싱긋 웃었다. 다이치는 입술을 살짝 뭉갰다. 그는 손 안에 배구공을 가볍게 튕겼다. 퉁, 하고 묵직하게 소리가 울린다. 스가와라는 슥 손짓을 했다. 다이치는 공을 스가와라에게 던졌다.


“리시브 연습 하려는 거지?”

“응. 오이카와의 서브, 제대로 막지 못했으니까.”

“역시 성실하네. 다이치.”


스가와라는 버켓을 네트 앞으로 끌고 왔다. 그는 높은 곳에서 강하게 공을 내리쳤다. 다이치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팔은 그대로, 다리를 이용해서 가볍게 받아치는 리시브는 다이치의 특기였다.


“스가, 조금만 더 세게.”

“오케이.”


버켓 안의 공이 빠르게 줄어갔다. 몇 차례고 다시 공을 채워, 던지고, 다시 던지고. 후끈한 공기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창밖의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마지막 공을 던지고는 손을 들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서 기말 공부도 해둬야지.”

“그래.”


다이치는 테이블 위의 물통을 집어 들었다. 체육관을 정리하고 나오니,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에 있었다. 다이치는 가방을 고쳐 매고는 스가와라에게 말했다.


“슈퍼 들렸다가 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오. 좋아.”

“연습 도와줬으니까. 그 답례.”

“매일 도와줘야겠는걸.”


스가와라가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나쁘지 않은 말이다. 다이치는 생각했다. 슈퍼에서 산 하드를 물고 둘은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어둑해진 거리를 가로등이 띄엄띄엄 밝히고 있었다. 다이치는 하드의 포장지를 뜯었다.


“아.”


이런. 다이치는 혀를 찼다. 아차, 하는 사이에 하드는 땅 위에 떨어졌다. 한 입도 먹지 못했는데. 그는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옆에서 스가와라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들렸다.


“슈퍼, 다시 들렸다가 올래?”


스가와라가 물었다. 다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냥 가자.”


고요한 저녁의 거리, 둘의 발소리만이 터벅터벅 울렸다. 스가와라는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아껴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에 흐를 텐데. 다이치는 힐끔 스가와라쪽을 바라보았다.


“먹고 싶어?”

“……어.”


연두색의 아이스크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말 듯 했다. 다이치는 스가와라의 손목을 붙잡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치는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스윽, 핥았다. 달콤한 메론향. 아이스크림은 혀끝에서 녹았다.


“야, 다, 다이치!”

“응?”


다이치는 붙잡은 손목을 놓아주며 태연하게 되물었다. 스가와라의 귀 끝이 발갛다.


“너- 이거…….”


스가와라 답지 않은 당황한 얼굴. 다이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던 스가와라는 결국 후우, 하고 한숨을 뱉더니 한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먹고 싶으면 말을 하라고. 갑자기 달려들지 말고.”

“알겠어.”

“정말이지.”


다이치는 스가와라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녹아서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망설이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안 먹고?”

“아-, 응.”


스가와라는 막대를 잡고, 방울져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어딘가 개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다이치는 푸웃, 웃었다. 눈치 챈 스가와라가 소리쳤다.


“뭐야, 다이치. 의도한 거지!”

“아, 귀엽네에-.”


다이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스가와라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가, 나 네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됐거든! 이번에는 안 줄 거니까.”


스가와라는 조금 남아있던 아이스크림은 한 입에 넣었다. 다이치는 스가와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가. 귀 빨개졌는데.”

“조용히 해.”


가로등 불빛 아래, 머리카락 사이로 불그스름하게 물든 스가와라의 귀가 보였다. 스가와라는 미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다이치는 웃음을 지었다. 스가와라는 남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만지작거렸다. 더운 여름날. 거리의 한 구석에서는 귀뚜라미가 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거리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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