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각글

[리에야쿠] REː

잉티 2016. 12. 7. 23:54

 


어떤 이야기의 시작을 단지 한 번의 전화벨 소리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밤중에 전화가 울렸다. 낯선 이가 아니길 바라며 수화기를 든다. 낡은 구식 전화기다. 이제는 그 번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따금 통신사며 대출 광고, 어눌한 보이스 피싱이 걸려오는 이 전화기에, 네가 찾아오기를 빈다.


수화기 너머는 말이 없다. 돌돌 말린 전선을 손가락으로 꼬며 창을 본다. 오늘 밤은 그믐이라고 했다. 고개를 내민 별들이 드물다. 이 침묵이 되레 반가운 이유는, 무엇?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던 어느 기다림처럼.

 

핸드폰의 번호를 가장 먼저 바꾸었으면서도 아직도 오랜 유선전화를 치우지 않은 이유를 너는 알고 있을까. 수화기를 잡을 때의 설렘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신호음이 울릴 때면 어쩐지 전화기 특유의 저릿한 노이즈 같은 것이 귓가를 스치곤 했다. 네 목소리 아래에도 섞여 있던. 전선을 타고 전해져오는 그 목소리의 질감은 곧장 들을 때하고는 또 달랐다. 그 작은 차이를 좋아했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첫 가을 서리 같은 침묵이 깨지기를. 망설임의 숨결이 닿는 듯하다. 날숨은 36.5도의 체온을 순식간에 흩어버리고는 먼 곳으로 날아간다. 놓친 것을 붙잡듯, 조금 가쁘게 숨을 들이쉰다. 그 소리가, 수화기의 너머로.

 

「……선배.

 

마침내 목소리가 문을 두드린다. 달도 가느다란 까만 밤이다. 어떤 이야기의 끝을 단지 한 번의 전화벨 소리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