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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루] 너에게 닿기 위한 시간



현대AU, 삽질물




에이스와 루피는 어렸을 때부터 친한 사이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터라 루피는 심심할 때마다 에이스를 보러 놀러가고는 했다. 둘은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놀았다. 마치 형제 같다고, 동네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 루피는 에이스를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건 에이스를 알았던 기간만큼이나 오래 전 이야기였다. 같이 길 위를 뒹굴고 나서, 제 등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었을 때였는지, 혹은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사서 제게 먼저 건네주었을 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루피는 에이스를 좋아했다. 아주 많이. 남자와 남자는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그랬다. 그렇지만 에이스는, 그래. 나중에 알게 된 말을 빌리자면 '호모포비아'였다.


그걸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길을 가다가 끌어안고 있는 게이커플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때 에이스는 그들이 들으라는 듯, 외쳤다.


'우웩, 더러워. 야. 루피야 보지 마. 눈 버린다.'


응, 이라고 대꾸했지만, 그날 루피는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절대, 절대 에이스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에이스는 남자랑 사귀는 걸 싫어하니까.


둘은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거쳐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조금 머리가 굵어진 에이스는 더이상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게이를 싫어하는 건 여전했다. 다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게 현명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은 곧잘 음담패설을 늘어놓고는 했다. 그 중에는 게이니, 후장섹스니 하는 것들에 빠삭한 녀석들도 있었다. 에이스는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아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여자모델들의 헐벗은 사진을 보며 E컵이니 F컵이니 하는 환상들을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얼굴 반반한 신입생들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누군가 루피의 이름을 꺼냈다.


'야, 걔는 어때. 루피인가? 예쁘건 아닌데 따먹으면 존나 귀여울 것 같지 않냐. 하, 내 밑에서 울 거 생각하면 꼴린다.'


다른 아이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에이스는 그 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녀석은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였다. 에이스는 학생부에 불려갔다. 일은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었지만, 에이스는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애가 그렇게 말했을 때, 에이스는 단순히 친한 동생이 그런 취급을받는다는 것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루피가 제 아래에 깔렸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발갛게 부은 눈가와, 헐떡이는 숨. 제 팔을 붙잡을 곧은 손가락. 무언가 안에서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루피를 좋아하나? 단 한 순간이라도 루피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에이스는 이를 악물었다. 배덕감이 그를 휘감았다. 그건 일종의 자각이었다.


그 이후, 에이스는 루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루피를 생각하면 자꾸만 심장이 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뛰어다니고 나면 흠뻑 젖어 있는 목덜미나, 천천히 깜빡이는 눈꺼풀 같은 것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저도 멈출 수가 없었다. 루피가 저와 같은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이스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대학에 온 루피는 여느 신입생들처럼 자연스럽게 과에 적응해갔다. 그는 자주 에이스와 마주쳤고, 몇몇 교양을 같이 들었다. 에이스는 보란듯이 여자친구를 루피에게 소개했다. 루피는 묘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희미하게 드러나던 감정은 대체 뭐였을까. 에이스는 고민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너도 대학 왔으니까 여친 사귀어야지-.'라고 말했다. 루피는 자꾸만 웃으면서 넘어갔다. 에이스는 계속 권했다. 아니, 사실 그러면서도 내심 루피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너도 여자친구 만들어. 진짜 좋다니까?'


어느 날처럼 한 말에, 루피는 정말로 여자애와 함께 나타났다. 루피가 웃으면서 여자애의 손을 붙잡는 모습을 보니 속이 끓어올랐다. 핸드폰 화면은 어느새 그 애와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새벽까지 복잡한 머리로 밤을 지새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에이스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나한테 너무 소홀해진 거 아냐? 라고 쏘아붙이던 여자 친구에게, 에이스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최근 그는 루피를 신경쓰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루피에게 헤어졌다는 말을 했을 때, 루피는 또 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는 것 같으면서도, 웃는 것 같지 않은 묘한 표정.



에이스가 헤어졌다고 했다. 루피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잠깐이나마 기뻤다. 저에게 차례가 돌아올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에이스의 곁에 있는 걸 보고 있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루피는 까만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가지 않는 아이와 사귀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미안한 마음에 신경을 써주기는 했지만,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에이스인데. 루피는 손가락을 톡, 톡 두드렸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말하자. 루피는 생각했다. 그냥 말하고, 에이스가 욕한다면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하는 거야. 바보 같이 그걸 믿냐고. 그래.


루피는 여자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미안하다고도 말했다. 펑펑 우는 여자애를 보고 있자니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곧 자신도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희미하던 용기마저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루피는 결국 에이스를 불러냈다. 에이스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루피는 입을 열었다.


‘있잖아, 에이스. 나 걔랑 헤어졌어.’

'뭐? 왜?'


에이스는 물었다. 루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 에이스가 좋아.'

'…….'


에이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루피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형이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지만...나, 근데, 아주 예전부터 형 좋아했어. 몰랐지?'


루피는 그렇게 말하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에이스는 숨이 막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미안, 좋아해서.’

'너…….'


목이 메었다. 루피는 미안, 이라고 작게 웅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에이스는 팔을 뻗어 루피를 붙잡았다.


'야, 잠깐만. 대, 대답을 들어야지.'


루피의 어깨 붙잡고 몸을 돌리자, 펑펑 울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에이스는 숨이 막혔다. 그는 당황해서 더듬더듬 말했다.


'야, 루피야. 울지 마……자, 잠깐. 울지 좀 말고….'


루피는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발갛게 부은 눈가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에이스는 결국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진심을 토해냈다. 몇 년만에야 겨우 인정한 진심이었다.


'나도 좋아.'


그 말에 루피가 고개를 들었다. 흡, 하고 그가 숨을 삼켰다.


'나도, 나도 너 좋아한다고.'


에이스의 말에 루피의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루피는 에이스를 꽉 움켜 안았다.


'진짜지?'

'어.'

'진짜 진짜로…….'


루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에이스는 루피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좋아해. 그는 속삭였다. 좋아해, 루피야. 맞닿은 살갗에서 따스한 체온이 전해졌다. 에이스는 옅게 웃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마주 안고 있었다. 따사로운 봄의 햇살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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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썰이니까 가볍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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