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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노타나] 레몬에이드와 초콜릿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다. 이른 아침의 거리에서는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슬슬 쌀쌀해지는 기온에 하나 둘 옷장 속 깊숙한 곳에 있던 가디건을 꺼내 들었다. 카라스노 고교에는 축제가 한달음으로 다가왔다. 은근히 들뜬 분위기가 교정을 맴돌았다. 지지난번 주부터 아이들은 축제 이야기를 화두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2학년 1반은 일일찻집이었다. 옆 반도 하고 옆옆 반도 하는 진부한 테마였다. 똑소리 나는 여자 부반장은 뭔가 차별화가 필요하다며 야심 차게 ‘여장’ 아이템을 외쳤다. 한 차례 반발과 큰 목소리와 책상을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오가고 나서야, 2학년 1반은 여장을 메인으로 한 일일찻집을 계획표로 제출했다.


첫 희생자는 반에서 예쁘장하기로 소문난 남자애였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에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타나카는 저도 내심 여장이라면 그 아이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한 명, 두 명, 여장을 할 아이들이 전해졌다. 타나카는 교실 한 켠에서 눈을 끔벅거리며, 여자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는 ‘히요시 군이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광경을 반쯤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걸린 아이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반대하는 모습은 퍽 우스웠다. 부반장이 칠판에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타나카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타나카 군이요!”

“뭐? 나 말이야?”


타나카는 이름이 불리자 저도 모르게 걸터앉은 책상에서 번쩍 일어났다. 부반장인 리코가 방싯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코는 여자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타나카 군이 가발 쓴 거 궁금하지 않아?”


맞아맞아. 궁금해! 같은 대화가 물결 일어나듯 퍼져갔다. 짓궃은 여자아이들 몇몇은 서로 소곤대더니 입을 가리고는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타나카는 입을 떡 벌린 채 기겁을 했다.


“말도 안 돼, 난 기집애 같이 생기지도 않았고…….”

“아아, 타나카 군이 가발 쓴 거 보고 싶었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 라면서 유이가 중얼거렸다. 타나카를 곧바로 바라보면서 입술을 말아 올리는 걸 보니 도무지 혼잣말 같지 않았다. 나도나도, 라면서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해사하게 웃었다. 너무 귀여울 것 같지 않아? 아이들이 말을 덧붙일수록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부반장 리코가 눈썹을 추욱 늘어뜨리고는 타나카를 향해 물었다.


“타나카아-, 이번 한 번만 해주면 안 돼? 응?”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못된 것들. 제가 그렇게 부탁하면 못 거절할 걸 아는 게 틀림없다. 리코는 어느새 그랬냐는 듯 실실 웃으면서 백묵으로 칠판에 타나카 류노스케, 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타나카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여장이라니…….



-



찰랑거리는 옅은 갈색 단발머리, 하늘하늘한 프릴과 부풀린 검정 치마, 그리고 그 위에 하얀 에이프런. 완벽한 여장을 해야 한다면서 여자애들은 야차처럼 달려들어 가발을 고정하고, 니삭스에 꽉 끼는 둥근 메리제인 구두를 신겼다. 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도 살짝 발라주었다. 타나카는 기겁을 했지만, 양팔을 꾸욱 눌러오는 탓에 차마 떨쳐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양호한 거야. 다른 애들은 파운데이션도 바르고, 마스카라도 했다고.”

“으엑.”


부반장 리코가 등을 퍽, 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타나카, 너 예상외로 잘 어울리는데? 그녀는 거울을 가져와 내밀었다. 거울로 얼굴을 살핀 타나카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게 뭐야, 완전 남자애잖아.”

“그럼. 너 남자애 맞잖아.”


안쪽으로 다른 남자애들이 들어왔다. 타나카와 같은 메이드복 차림이었다. 검은 긴 생머리에 새초롬한 얼굴. 화장을 해서 그런지 조금은 낯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굵은 선은 숨길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다들 잘 어울렸다. 타나카는 저도 모르게 리코에게 말했다.


“얘네들은 잘 어울리는데.”

“그걸 칭찬이라고 하냐.”


그중 한 남자애가 투덜거리며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발을 툭툭 차면서 걸어가자 리코가 그렇게 걷지 말라니까, 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사뿐사뿐 걸으라고. 치마 입고 동네 백수처럼 걸어 다니지 마! 리코는 애들의 화장이며, 옷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나는?”


타나카가 자신의 앞을 그대로 지나치는 리코를 향해 물었다.


“넌 어색한 게 매력이야.”


리코는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남자 애들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타나카는 민망함에 머리를 벅벅 긁으려다가 움칠, 했다. 가발이 손끝에 걸렸다. 그는 스윽 손을 내렸다. 불편해. 타나카는 투덜대며 밖으로 나갔다. 슬슬 영업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어서 오세요.”


문 앞에 선 남자아이가 손님을 맞았다. 억지로 높인 목소리가 우스워서, 타나카는 힐끔힐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예상외로 장사는 호황이었다. 계단 바로 옆 교실이라 자리가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부반장의 말대로 ‘여장’ 아이템의 효과를 본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이 꽤 몰려들자 타나카도 정신없이 바빠졌다.


“류! 앞에 손님 좀 봐줘!”

“아, 응.”


어떤 남자아이의 외침에 타나카는 문 옆에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들어섰다.


“어서 오십쇼!”


라멘 집 종업원처럼 있는 힘껏 외친 타나카는, 손님의 얼굴을 보고는 입술을 반쯤 벌렸다. 여자아이들이 발라준 립스틱이 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눈앞에는 엔노시타가 있었다. 엔노시타 치카라. 그는 타나카를 보며 말했다.


“안내해줘야지.”


엔노시타 타나카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힐끗 바라보더니 웃으며 덧붙였다.


“……타나코.”


명찰에는 타나코(タナコ)라는 이름이 바른 글씨로 쓰여 있었다. 타나카는 민망함에 목덜미가 화끈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뻣뻣한 걸음걸이로 엔노시타를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뭐 먹을 거야?”

“친절하게 말해야지.”


엔노시타가 턱을 괴고는 타나카를 올려다보았다. 그, 그냥 먹으면 되지. 타나카는 웅얼거렸다. 엔노시타는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그저 싱글싱글 웃고만 있었다. 타나카는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문은 뭐로……?”


뭐, 여전히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엔노시타는 퍽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는 메뉴판을 스윽 훑어내리더니 레몬에이드와 치즈케익을 가리켰다. 타나카가 쿵쾅거리면서 안쪽으로 뛰어갔다. 엔노시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귀여운 단발머리에, 프릴이 달린 메이드복을 입었는데도 건장한 체격은 쉬이 가려지지 않았다. 그 간극이 더 좋다. 엔노시타는 소리 없이 웃으며 생각했다.


곧 타나카가 레몬에이드를 들고 나타났다.


“주문하신 레몬에이드와 치즈 케익 나왔습니다!”


타나카가 탁,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어찌나 세게 놨는지 안의 음료가 출렁거렸다. 엔노시타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얼음이 담긴 샛노란 레몬에이드 잔을 잡았다. 구부러진 빨간 빨대를 입에 물고는 꿀꺽꿀꺽 음료를 목구멍 아래로 넘겼다. 차갑고, 새콤달달한 맛이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먹어본 것 같은 맛. 어쩌면 대형 마트에서 시식해본, 혹은 작년 이맘때 쯤 어느 반의 일일찻집에서 먹었던 그 레몬에이드의 맛일지도 몰랐다. 엔노시타는 기억의 어드메에서 까마득히 올라오는 맛을 혀끝으로 즐기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타나카의 살랑거리는 레이스 치마를 바라보았다. 그 아래로 드러나는 힘줄이 도드라진 허벅지와, 동그란 무릎, 탄탄한 종아리. 쪼르륵, 레몬에이드가 빨대를 따라 올라왔다.


교실 안을 돌아다니는 타나카는 조금만치도 여성스럽지 않았다.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걸음걸이며, 우렁찬 목소리, 떡 벌어진 어깨. 가끔 의자에 앉을 때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다리 같은 것이 여지없이 남성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따금. 햇빛에 그 까만 눈동자가 반질반질 빛날 때면.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살짝 벌어져 고른 치아를 드러낼 때면, 엔노시타는 그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엔노시타는 벌써 두 잔째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있었다. 바닥을 드러낸 레모네이드는 녹아버린 얼음과 뒤섞여 밍밍한 맛이 났다. 달짝지근한 끝맛과 슬쩍, 코끝을 스치는 레몬 향. 엔노시타는 빨간 빨대의 끝을 슬슬 뭉개다가, 얼음 하나를 입안에 넣고 굴렸다. 녹아서 동그래진 얼음은 볼 안쪽의 불그스름한 살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웠다. 타나카가 슬쩍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조금 어색한 얼굴이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걸까. 엔노시타는 비스듬히 턱을 괸 채 생각했다.


앞문이 드르륵 열렸다. 타나카가 반가운 얼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노야!”


엔노시타는 고개를 돌렸다. 작은 키에, 살짝 치켜 올라간 커다란 눈. 리베로인 니시노야였다. 그는 메이드복을 입은 타나카를 발견하더니 문 앞에서 한참을 웃어댔다. 타나카의 귀가 민망함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조금 진정된 니시노야에게 말했다.


“여기 엔노시타도 있어.”

“치카라!”


니시노야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테이블로 다가와 맞은 편에 앉았다. 엔노시타는 입술을 올려 해사하게 웃었다.


“뭐 먹을 거야?”

“음……. 아이스 커피.”

“오케이. 금방 갖다 줄게.”


그렇게 말한 타나카는 휘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니시노야는 손도 대지 않은 치즈케익을 보더니, 먹어도 돼? 하고 물었다. 엔노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니시노야는 이곳저곳을 실컷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그는 신이 나서 다트 던지기를 했던 어느 1학년 교실과, 그 옆의 양호실과, 복도 벽마다 붙어있던 포스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엔노시타는 이따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커피.”

“땡큐.”


노야가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플라스틱 잔을 받아들었다. 까만 커피 위에 얼음 몇 개가 동동 떠 있었다. 타나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엔노시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엉망으로 구겨진 치맛단과, 불편해 보이는 둥근 코의 구두. 시선을 눈치챘는지, 타나카가 엔노시타의 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타나카였다.


“지금 몇 시지?”


타나카가 불쑥 물었다. 니시노야는 핸드폰을 보았다. 2시 조금 넘었어. 그가 말했다. 분홍색 휘장을 젖히고 고개를 쑥 내민 여자아이가 타나카를 향해 소리쳤다.


“타나카 군, 슬슬 교대해도 돼! 서빙은 히요시가 맡을 테니까.”

“알겠어.”


타나카는 엔노시타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 잠깐 시선을 두더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 조금 뒤에 엔노시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시노야가 고개를 들었다.


“가려고?”

“아, 화장실 좀. 기다리기 뭐하면 다른 데 가 있어도 괜찮아.”


니시노야는 컵을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노시타는 꺼슬하게 일어난 손가락 끝을 매만졌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로 나갔다. 타나카가 있는 곳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엔노시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의문이었다. 그는 당연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치마 끝, 하늘거리는 레이스 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틈엔가 비뚤어진 가발을 수습해보려고 타나카는 눈살을 찌푸린 채 거울을 보고 있었다. 옅은 단발의 머리카락이 자꾸만 그의 손가락에 엉켰다.


타나카의 시선이 거울 너머, 엔노시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엔노시타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타나코. 그는 눈을 가벼이 휘며 웃었다. 손을 씻던 아이들이 손끝을 탁탁 털며 화장실을 나갔다.


“아, 잠깐, 만…….”


타나카는 그렇게 말하며 점점 화장실 안쪽으로 물러났다. 그의 키보다 한 뼘 높은 곳에 달린 작은 창. 그 사이로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물에 젖은 베이지색 타일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얇은 가발사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리고 조금 비뚜름하게 드러난 본래의 머리. 엔노시타는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욕망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 아작아작 씹었던 얼음들이 전부 녹아버리고, 뜨거운 체온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조금 번진 립스틱이 입술 옆에 묻어있었다. 후우. 엔노시타는 저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등골이 저릿저릿 당겼다. 그는 타나카의 손목을 붙잡았다. 단단한 뼈. 이렇게나 투박한데도 어쩐지 멈출 수가 없다.


타나카는 속수무책으로 화장실 맨 끝칸으로 밀려들어 갔다. 엔노시타. 입술이 벌어지고 제 이름이 흘러나왔다. 엔노시타는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타나카가 동그란 눈동자로 저를 바라보았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눈동자. 그리고 그 아래 자리 잡은 발간 입술.


“치카라, 라고 불러.”


내내 말을 아껴왔던 게, 마치 이 한 마디를 위해서였던 것처럼. 엔노시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조금 멍했지만, 그와 동시에 놀랄 만큼 정신 또렷하기도 했다. 모순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엔노시타는 그 이상 자신의 상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너, 갑자기 무슨…….”


당황이 서린 목소리로 타나카가 더듬더듬 말했다. 엔노시타는 해사하게 웃었다. 치카라. 그는 속삭였다. 그렇게 불러줘. 엔노시타는 붉은 립스틱이 옅게 번진 타나카의 입가를 보았다. 아랫입술 오른쪽. 조금 옆에. 그는 엄지로 붉은 자국을 문질렀다. 립스틱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타나카의 손이 어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야, 잠깐. 자, 기다려 봐. 타나카가 무어라고 빠르게 말하는 목소리가 귓가를 웅웅 울렸다. 엔노시타는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서, 타나카의 등이 타일과 맞닿았다. 엔노시타의 입술이 그 자국 위를 덮었다.


어깨를 쥐고 있던 타나카의 손에 힘이 풀렸다. 촉, 하고 짧게 입술이 맞닿는 소리가 났다. 엔노시타는 손을 뻗어 타나카의 뒷머리를 붙잡았다. 뻣뻣하고 얇은 가발사가 손가락에 얽혔다. 입술이 맞닿았다. 타나카는 눈을 뜨고, 느리게 눈꺼풀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엔노시타는 그 눈동자를 올려다보면서 슬몃 웃었다. 그는 혀를 내밀어 타나카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뜨뜻미지근한 체온이 뒤섞였다. 타나카의 입술에서는 채 지워내지 못한 립스틱의 불유쾌한 맛이 감돌았다. 그리고 희미한 초콜렛. 엔노시타는 눈을 감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의 체향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타나카의 손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제 등 위를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엔노시타는 그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마침내 엔노시타가 입술을 떼고 타나카를 곧게 마주 보았을 때, 타나카의 가슴은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엔노시타는 더 번져버린 타나카의 아랫입술에 시선을 두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엔노시타.”

“치카라.”


그렇게 불러 줘. 엔노시타는 덧붙였다. 타나카는 조금 망설인 끝에 치카라, 라고 작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엔노시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타나카가 말했다.


“장난, 인 거지?”


타나카는 여태까지 봐온 그답지 않아 보였다. 조금은 진지한 눈동자였다. 그러나 차마 시선은 마주치지 못해, 그의 눈 끝은 다시 엔노시타의 쇄골 근처를 맴돌았다. 엔노시타는 입을 열었다.


“아니, 진심이야.”


엔노시타는 조금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좁은 화장실 벽에 부딪혀 울렸다.


“진심이야, 류.”


타나카는 할 말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엔노시타는 웃었다. 입 안에는 아직도 그의 온기가 남아, 이 어색한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엔노시타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가발과, 헝클어진 옷깃 같은 것에 신경을 쏟으려고 애썼지만, 사실 그 모든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엔노시타는 결국 침묵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원해서 한 거니까. 이제 나가자. 노야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 그냥 그렇게 가도 괜찮아?”


타나카의 말에 엔노시타가 손끝을 움켜쥐었다. 글쎄. 괜찮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를 바라보는 타나카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답을 바라고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마치 방금 전 입맞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던 것처럼, 엔노시타는 가볍게 웃었다. 그 말에 타나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가 불쑥 말했다.


“사귀자.”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 엔노시타는 놀라 되물었다. 타나카는 어느 틈엔가 평소처럼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미간을 조금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사귀자고. 이걸 바란 거 아니었어?”

“……맞아.”

“마음 바뀌기 전에 수락하는 게 좋을걸.”


타나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엔노시타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문을 열었다. 밖에는 몇몇 s아이들이 축제 때 사용한 도구를 씻어내고 있었다. 쏴아아. 세게 틀어놓은 물소리, 농담에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엔노시타는 타나카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있잖아.”

“어.”


엔노시타가 꺼낸 말에 타나카가 대꾸했다.


“왜 갑자기 사귀자고 한 거야?”

“너 아까, 괜찮다고 거짓말했잖아. 그냥 그거 보기 싫어서, 얼떨결에.”


그 대답에 엔노시타는 작게 웃었다. 타나카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는 머리를 붙잡았다.


“으으,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엔노시타. 그거 취소할래.”

“뭐? 사귀자는 거?”


타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엔노시타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안 돼.”

“왜애!”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놓칠 순 없지.”


그리고 엔노시타가 아니라 치카라라니까. 엔노시타는 덧붙였다. 그는 뾰루퉁하게 튀어나온 타나카의 입술을 보면서 웃었다. 가발은 여전히 엉망진창이고, 매서운 인상과, 프릴이 달린 메이드복과,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걸음걸이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엔노시타는 여전히 타나카가 좋았다. 제 빛으로 빛나고 있는, 투박하고 단단한, 그래서 멋진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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