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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_하이큐

[카게스가] 처음

잉티 2016. 1. 20. 00:57



[카게스가] 처음




“아-.”


연습 중이던 카게야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쥐고 있던 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 소리를 낸 공은 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카게야마는 뻐근한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이상을 눈치챈 스가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별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카게야마는 손목을 제 쪽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그는 이전부터 거짓말을 잘 못 했다. 스가는 카게야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리 줘봐. 삐었나 보다.”

스가가 카게야마의 손목을 살살 움직였다. 윽. 카게야마가 신음을 내뱉었다. 근육이 놀랐는지 당기듯이 아팠다.


“금방 괜찮아져요.”

“그래도. 겨울이니까 제대로 스트레칭 해주지 않으면 안 돼. 작은 부상도 누적되면 위험하니까.”


스가가 카게야마의 손목을 천천히 돌리며 대꾸했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경직된 근육이 조금씩 풀어졌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카게야마의 얼굴도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다. 카게야마는 문득 스가와 닿은 손목이 뜨겁다고 느꼈다. 그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스가는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발개진 얼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귀여웠다. 스가는 잘게 웃었다.


“카게야마.”

“네? ……네!”

“이번 주말에 만날래? 데이트 안 한 지 꽤 됐잖아.”


스가는 소곤소곤 속삭였다. 그의 말에 카게야마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그 반응에 스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일요일 날 오전 연습 끝나고 보자. 스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공을 가지러 버켓 쪽으로 돌아갔다.



-



금세 주말이 찾아왔다. 카라스노는 쉬는 날 없이 연습했지만 일요일 오후만큼은 자율이었다. 대체로 모든 멤버들이 남아있었지만, 기말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이번 주에는 몇몇이 빠질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연습도,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스가와 데이트하는 것이 괜찮은 건지 잠깐 고민했지만, 스가가 다시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은 같을 것 같았다. 오후를 기다리는 연습시간이 처음으로 길게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힘껏 뛰어올라 서브를 넣었다. 3 대 3 연습 경기였다. 카게야마는 잡다한 생각들을 지우고 경기에 집중했다.


연습 경기가 끝나고 다들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겨울이었지만 한바탕 뛰고 나니 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으면 단숨에 식어 추워질 터였다. 카게야마는 스포츠 드링크로 마른 입안을 채웠다. 갈증이 가시니 살 것 같았다. 모여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다이치가 불쑥 물어왔다.


“카게야마, 요새 조금 이상한데. 무슨 일 있어?”

“에? 평소랑 비슷하지 않아……?”


옆에 서 있던 아사히가 물었다. 다이치는 눈살을 미묘하게 찡그리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좀, 들떠있다고 해야 하나.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습 때는 제대로 집중하고 있기는 한데, 그 밖의 시간에는 역시 좀 이상해.”

“저, 제, 제가요?”


카게야마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다이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뭐,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내 착각인 것 같으니까 신경 쓰지 마.”

“네에…….”


카게야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다이치와 아사히는 금세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버끔거리다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라커룸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게야마는 제 사물함을 열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가지런히 접힌 옷가지와 수건을 바라보다가,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히나타였다.


“뭐야, 카게야마. 여기서 뭐 해?”

“아무것도 아니야.”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무래도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무얼하고 싶은 건지도. 자꾸만 다른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이내 점심이 가까워지고, 오전 연습이 끝이 났다. 오후 자율 연습에 남는 사람들은 다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노야는 가방을 멘 카게야마를 보더니 물었다.


“카게야마, 같이 안 가?”

“아, 저, 그, 그, 그…….”


카게야마가 더듬대고 있는데, 스가가 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오늘은 시험공부. 내가 조금 도와주기로 했어.”

“어라, 스가 선배가요?”


노야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 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가 저번에 도와달라고 했거든. 그의 말에 다들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카게야마가 저번 학기에 간신히 낙제를 면했던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노야 너도 도와줄게, 라고 말하며 스가는 카게야마와 함께 체육관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아, 밥부터 먹을까.”


스가는 카게야마의 손을 붙잡았다. 둘은 번화가까지 걸어갔다. 같이 점심을 먹고, 따뜻한 에그 타르트와 핫초코를 디저트로 먹었다. 한참을 카페에 있던 두 사람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카게야마는 외투를 여몄다. 춥네. 스가가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힐끔 고개를 돌려 스가를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코끝과 귀가 빨갰다. 카게야마가 손을 뻗어 스가의 귓가를 매만졌다. 스가가 놀라 눈을 깜박였다.


“차가워요.”


카게야마가 말했다. 스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응, 차갑지. 겨울인걸. 네 귀도 빨개.”


스가는 양손으로 카게야마의 귓가를 붙잡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카게야마의 심장이 빠르게 쿵, 쿵 뛰었다. 카게야마는 손끝을 폈다가 오므렸다. 추운 날이었는데도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그는 스가의 옅은 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예쁘게 솟은 코와 그 아래 자리 잡은 입술도.


-키스하고 싶다.

문득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그 말을 곱씹다가 화르륵, 얼굴을 붉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붉은 기가 얼굴에서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스가는 고개를 기울여 카게야마의 숙인 얼굴을 바라보았다.


“카게야마? 괜찮아?”


카게야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뻣뻣한 움직임으로 앞서서 걸어갔다. 스가는 당황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뒤따라 갔다. 스가가 카게야마의 손을 붙잡았다. 카게야마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스가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카게야마가 빨랐다. 그는 스가의 어깨를 붙잡고 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스가는 어, 어, 하면서 카게야마의 손길에 끌려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선 카게야마는 스가와 마주 보고 섰다. 스가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양손으로 스가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스가 선배.”


목소리가 굳어 있었다. 스가는 카게야마를 올려다보았다.


“저, 저 좋아하시죠?”

“으응. 좋아해.”

“저도 선배,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문득 충동에 이끌려서 골목으로 왔지만, 막상 스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까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스가는 말간 눈동자를 깜박이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러니까, 키스, 해도 될까요?”


그 말에 스가가 작게 웃었다. 그의 눈가가 예쁘게 접혔다. 그는 카게야마의 이상한 행동들이 무엇 때문이였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작은, 아니, 커다란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가는 해사하게 웃으며 답했다.


“좋아.”


그 대답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갖다 대었다. 처음에는 차갑다가, 이내 조금씩 따뜻해졌다. 스가는 살짝 입술을 벌렸다. 카게야마의 코끝이 닿았다. 서로의 숨, 서로의 체온이 가까워서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스가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따뜻하다. 차가웠던 몸이 서서히 녹는 것 같았다. 둘은 눈을 파르르 감았다. 카게야마는 서툴게 입술을 맞췄지만, 스가는 오히려 그 서툶이 좋았다. 처음, 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도, 그도.


입술을 뗀 카게야마는 스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스가의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붉은 혀가 하얀 얼굴과 대조되었다. 카게야마는 말했다.


“좋아해요, 스가 선배.”


스가는 웃었다. 그는 살짝 발을 들어 카게야마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촉, 소리가 났다. 스가는 말했다.


“나도, 좋아해.”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스가를 꽉 안았다. 따뜻하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품 안의 그가 좋아서 견딜 수가 없다. 처음이라 서툴지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스가는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좋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 빤히 보였다. 귀엽다. 그는 눈을 감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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