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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히로다이] 의식의 흐림

잉티 2016. 12. 6. 22:53


 

덥다. 오늘은 913일이다. 가을이 막 찾아왔지만, 여전히 해는 뜨겁다. 비가 오고나면 기온이 한 움큼씩 내려간다. 덥다. 사실 더운 건 그것 때문이 아냐.

 

허벅지를 잡아 벌린다. 내장과 내장이 스치는 감각은 기묘하고도 혼란스럽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서서히 용암 속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목덜미에 숨이 닿는다. 이만큼의 날숨이 이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놀랍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선배. 부름을 밀어내듯이 그가 안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부르면 그가 싫어한다는 걸 안다. 단지 졸업한지가 벌써 몇 년이야하고 무뚝뚝하게 대꾸하는 얼굴이 좋아서. 단단한 팔뚝을 붙잡는다. 열기로 땀이 흐른다. 등이 미끈거린다. 젖은 머리카락이 자꾸만 달라붙는 것을, 그가 한 손으로 쓸어 올린다. 침을 삼킨다.

 

마음이 부푼다. 익으면 으레 껍질을 튿어내고 살을 드러낸다. 알은 붉다.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씨앗들이다. 열이 오르고 눈앞이 흐려지도록 울고 나면 끝이 나는 열병처럼. 그가 목덜미에 입을 맞춘다. 오랜 버릇이다.

 

들뜬 뺨에 닿는 공기가 시리도록 차다. 벌써 가을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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