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AU] 선발시험 래번클로, 네코마의 이야기 “1학년들이 온다!” 누군가가 외쳤다. 다들 창문을 열고 성 밖을 내다보았다. 신학기의 시작. 짐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설고 어린 꼬마들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냥터지기 해그리드는 커다란 손을 뻗어 1학년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른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집합을 알리는 소리에 래번클로의 재학생들은 망토를 걸치고 잰걸음으로 탑을 내려왔다. 신학기를, 그리고 신입생을 맞기 위해 연회장으로 갈 시간이었다.커다란 연회장의 하늘은 어둑했다. 짙푸른 밤하늘 위로 별 무리가 흩뿌려져 있었다. 밝은 빛으로 타오르는 수백 개의 촛불을 앞에 두고, 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회장의 끝에는 교수들이 앉은 긴 테이블이 놓였다. 고..
[오이스가] 슬픔에서 깨어난 어느 날부터 세상이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선명했던 사진이 세월이 지나 서서히 바래가듯, 나의 시계(視界)도 점차 바래갔다. 싱그러운 풀밭, 이른 봄의 벚꽃, 푸른 하늘과 학교의 담쟁이 넝쿨. 문득 선 건널목 앞의 신호등까지 색을 잃었다. 차츰 세상은 흑백사진처럼 변했다. 일상에 사소한 불편함이 생겼다. 크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손끝에 걸리는 것 같은 사소함. 엄마와 찾아간 시내의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시신경에 교란이 생긴 것 같다며 의사가 늘어놓는 장황한 의료용어들을, 나는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하며 잿빛이 되어버린 세계. 마치 어느 오래된 무성영화를 보듯 했다. 아주 늦은 밤, TV에서 흘러나오던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연기처럼. 제목을 잊..
[카게스가] 처음 “아-.” 연습 중이던 카게야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쥐고 있던 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퉁, 소리를 낸 공은 구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카게야마는 뻐근한 손목을 붙잡았다. 그의 이상을 눈치챈 스가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별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카게야마는 손목을 제 쪽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그는 이전부터 거짓말을 잘 못 했다. 스가는 카게야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리 줘봐. 삐었나 보다.” 스가가 카게야마의 손목을 살살 움직였다. 윽. 카게야마가 신음을 내뱉었다. 근육이 놀랐는지 당기듯이 아팠다. “금방 괜찮아져요.” “그래도. 겨울이니까 제대로 스트레칭 해주지 않으면 안 돼. 작은 부상도 누적되면 위험하니까.” 스가가 카게야마의 손목을 천천히 돌..
[거인아키] 3월의 바람 처음에는 작은 불안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입부한 1학년. 운동신경이 좋네.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재능은 무서울 정도로 자라나서, 어느새 내가 선 발판을 무너뜨렸다. 170cm가 안 되는 작은 키에도 마치 날개를 단 것만 같았다. 코트 위를 도약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작은 거인-이라고. - “선배. 오늘 끝나고 연습, 도와주실래요?” 준비운동을 하던 중에 그가 물어왔다.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했으면서. 아키테루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년 같은 얼굴이다. 그러나 그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열등감, 자책, 좌절.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자신만이 느끼고 있다는 것 역시..
[이와오이] 도화가 피는 날에 동양풍 AU 그건 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이었다. 사람 좋은 아비가 제 손을 꼭 붙잡고 속닥이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달음박질하여 갔더랬다.토오루, 저 대문을 넘어서면 네 신부가 될 아이가 있단다.키도 작고 손도 작던 어린 날의 저는 들뜬 가슴을 안고 문지방을 넘었다. 그리고 그때 보았다. 사나운 눈매를 한 까무잡잡한 계집애를.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못생겼어.”“……뭐?” 이와이즈미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별거 아냐.”“별거 아니긴. 다 들었는데. 못생겼다고 그랬지, 빌어먹을 오이카와.”“어라, 들켜버렸네-.”“죽여버린다, 네 녀석.”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를 향해 이와이즈..
[아카보쿠] 그의 뒤에서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에게 시선이 갔다. 항상 들떠있는 텐션, 끝없이 치솟는 자신감. 그런데도 이따금 애처럼 챙겨줘야 하는 부분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조금씩 끌어당겼던 것 같다. 주장이면서도 막내처럼 구는 점이 좋았다. 스파이크가 성공하면 내지르는 함성도, 힘껏 뛰어오르는 탄력 있는 점프도. 어느 시점, 어느 순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시선은 언제가 그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말해보지 않으려 한 건 아니었다. 선배, 라는 말은 쉽게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언제나 혀 위를 맴돌다가 이내 뱃속으로 다시 삼켜졌다. 어느 배우의 커밍아웃 기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던 그를 보며,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쿠토 선배,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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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오이] 너의 곁에서 졸업 이후 선수 생활. 뜨거운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삑, 하고 짧게 울리는 심판의 휘슬. 심장이 뛰었다. 가슴이 당기는 익숙한 긴장감이 오히려 반가웠다. 오이카와는 배구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몇천 번이고 반복한 동작이 하나의 움직임처럼 유려하게 이어졌다. 뒤로 조금 물러서서, 빠르게 도약하는 점프 서브. 그러나 공은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오른쪽 무릎이 찢어질 듯 당겼다. 쿵, 소리와 함께 시야가 내려앉았다. 떨어진 배구공이 바닥 위를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주변이 시끄러웠다. 누군가의 비명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었다. 신경을 헤집어놓는 듯한 통증이 눈앞을 흐릿하게 했다. 오이카와! 익숙한 목소리가 그렇게 외쳤던 것도 같다. 아마도 이와이즈미 아닐까...
탁. 타악. 하얀 백묵과 칠판이 마주치는 소리가 고요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웅얼거리는 선생의 목소리와 이따금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소리. 정적의 너머, 어둑한 창밖으로는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내려앉은 눈들이 어느새 한 뼘이었다. 경비는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섰다. 학생들이 걸어갈 길이 조금씩 만들어졌다. 그 위를 다시 눈송이가 덮고, 또 덮고. 몇몇 아이들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바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우시지마는 손끝으로 펜을 느릿하게 돌렸다. 하얗게 뒤덮인 운동장을 보며 저도 모르게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교문 밖에서 저를 바라보던 소년. 그 단정한 가마와 까만 눈동자, 콧잔등 위의 주근깨. 추위에 떨면서도 옅게 웃던 모습이 선명했다. 야마구치 타다..
[우시야마] 고백 상대 학교의 응원 소리가 귓가를 먹먹하게 울린다. 쿵, 소리와 함께 배구공이 체육관 바닥에 부딪혔다. 아래로 내리꽂는 듯한 강한 스파이크. 블로킹을 뚫는 파워. 관중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움직임에 자꾸만 시선이 향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牛島 若利)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교 배구선수. 야마구치는 가슴이 쿵, 쿵, 뛰는 것을 느꼈다. 체육관의 눈부신 조명 아래서 우시지마는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데도 그는 도무지 지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주장이자 에이스. 야마구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멋있다. 코트 위에서 누구보다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5세트, 듀스까지 이어진 시합은 결국은 카라스노의 승리로 끝이 났다..